익산은 막상 가기 전에는 역사 유적만 조용히 보고 오는 도시처럼 느껴졌었다. 그런데 미륵사지, 왕궁리유적, 교도소세트장을 한 번에 묶어 돌아보니 생각보다 훨씬 리듬이 있었다. 미륵사지는 넓고 비어 있는 자리 자체가 먼저 인상에 남았고, 왕궁리유적은 그보다 더 낮고 단정한 분위기로 이어졌다. 그러다 교도소세트장에 가면 갑자기 공기가 바뀌면서 익산이 의외로 한 가지 결만 가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. 그래서 이 코스는 유적 몇 군데 보고 끝나는 날이라기보다, 익산이 가진 시간의 층을 조금 다르게 건너보는 흐름에 가까웠다. 직접 돌아보니 조용한 곳은 조용한 대로 좋았고, 의외의 장소는 또 그 의외성 때문에 더 또렷하게 남았었다.
미륵사지의 넓은 빈자리
미륵사지는 사진으로 볼 때보다 훨씬 넓었다. 처음 도착했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도 화려하다는 쪽이 아니라, 이렇게 넓은 자리가 오래 남아 있다는 사실 자체가 묘하다는 것이었다. 흔적은 많은데 공간은 크게 열려 있어서, 뭔가를 꽉 채워 보게 만드는 유적지와는 조금 결이 달랐다. 그래서 오히려 더 오래 걷게 됐다. 석탑 쪽을 보고, 다시 터를 보고, 한참 지나서 또 뒤돌아보게 되는 식이었다. 그날은 생각보다 바람도 조금 있었는데, 넓은 터 위로 바람이 지나가니까 더 비어 있는 느낌이 났었다. 좋았던 점은 설명을 많이 읽지 않아도 이곳의 분위기가 먼저 전해진다는 것이었다. 반대로 기대와 조금 달랐던 점은 이름값 때문에 더 극적인 장면이 있을 줄 알았는데, 실제 인상은 훨씬 담백했다는 점이었다. 그런데 그 담백함이 좋았다. 괜히 소리를 낮추게 만드는 넓은 자리감이 있었고, 익산이라는 도시가 생각보다 차분하게 기억되기 시작한 것도 바로 여기서부터였다.
왕궁리유적의 낮은 결
미륵사지가 넓게 열리는 공간이었다면, 왕궁리유적은 훨씬 더 낮고 정리된 느낌으로 남았었다. 같은 익산의 유적권인데도 분위기가 미묘하게 달랐다. 미륵사지는 시야가 크게 퍼지는 쪽이었고, 왕궁리유적은 훨씬 조용하게 가라앉는 쪽이었다. 그래서 둘을 붙여 보는 게 좋았다. 하나만 봤으면 익산이 너무 한쪽으로만 기억됐을 것 같았다. 왕궁리유적에서는 화려한 장면보다 길과 터, 남아 있는 석탑 주변의 거리감이 더 인상적이었다. 좋았던 점은 공간이 과하게 관광지답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. 반대로 기대와 조금 달랐던 건, 왕궁리라는 이름 때문에 조금 더 웅장한 분위기를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훨씬 단정하고 조용했다는 점이었다. 그런데 이상하게 그쪽이 더 오래 갔다. 잠깐 멈춰 서 있을 때 오히려 주변이 더 잘 보였고, 걷는 속도도 미륵사지보다 자연스럽게 더 느려졌었다.

교도소세트장의 의외성
교도소세트장은 앞의 두 곳과 결이 완전히 달랐다. 그래서 오히려 동선 안에 들어가야 재미가 생겼다.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까지 보고 나면 익산이 전부 차분한 역사 도시처럼 느껴질 수 있는데, 교도소세트장에 가는 순간 분위기가 확 바뀐다. 막상 가보니 실제 교도소가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오는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. 익숙한 장면처럼 보이는데 실제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또 낯설었다. 좋았던 점은 예상보다 훨씬 현실감 있게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. 그냥 테마 공간처럼 가볍게 끝나는 게 아니라, 복도와 감방 구조를 보고 있으면 괜히 말이 줄어들었다. 햇빛이 강하게 들어오던 날이라 그런지 회색 벽과 복도가 더 건조하고 차갑게 보였던 것도 기억난다. 반대로 기대와 조금 달랐던 점은 더 놀이공간처럼 느껴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묵직한 인상이 남았다는 점이었다. 그래서 유적지 다음 동선으로 붙였을 때 훨씬 또렷했다.

익산을 덜 단순하게 남기는 순서
세 곳을 하루에 묶는다면 미륵사지, 왕궁리유적, 교도소세트장 순서가 가장 자연스러웠었다. 먼저 미륵사지에서 익산의 넓고 오래된 시간을 보고, 왕궁리유적에서 그 분위기를 조금 더 낮고 단정하게 이어 간 다음, 마지막에 교도소세트장에서 결을 확 바꾸는 흐름이었다. 반대로 교도소세트장을 먼저 보면 첫인상이 너무 강해져 뒤쪽 유적지의 차분함이 조금 약하게 느껴질 수 있었고, 왕궁리유적을 마지막에 두면 하루가 너무 조용하게만 끝날 수도 있었다. 이 조합의 장점은 익산을 역사 유적 한 줄로만 기억하지 않게 만든다는 데 있었다. 미륵사지는 넓은 자리감으로, 왕궁리유적은 낮고 단정한 공기로, 교도소세트장은 의외성과 현실감으로 남았었다. 그래서 다 보고 나니 익산은 생각보다 훨씬 덜 단순한 도시였고, 오히려 그 점 때문에 다시 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었다.